(Book)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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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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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만에 색다른 주제의 좋은 책을 읽었다. 제목은 죽은 자의 집 청소. 저자는 김완이다. 죽음을 주제로 다룬 수필집이라 처음에는 읽는 것을 망설였으나 와이프가 모 심야 라디오 프로의 책 서평 코너에서 들었는데 너무 느낌이 좋아서 집 근처의 서점에서 구입하였다며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 문장도 술술 넘어가도록 쉽게 쓰여서 읽기도 너무 쉽다고 강력 추천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읽게 되었다. 엄청난 속독파인 와이프와 달리 천천히 읽는 정독파인 나도 재미있게 읽으며 쉽게 완독을 할 수 있었다.

 

 

저자 김완은 대학에서 시(詩)를 전공했으며, 출판과 트렌드 산업 분야에서 일하다가 전업작가로서의 생활도 했다. 그 후 취재와 집필을 위해 수년간 일본에 체류하며 죽은 이가 남긴 것과 그 자리를 수습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후 귀국하여 유품정리를 위한 특수청소 서비스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죽음의 현장에서 드러난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이 책은 올해 5월 30일에 1판 1쇄 발행이었는데 불과 9월 17일에 21쇄 발행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미 많은 분들이 구입한 인기 도서임을 알 수 있다. (하기야 평소 독서량이 적은 우리 부부도 읽었으니...)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 구성되었는데 제1장에서는 죽은 자가 남기고 간 현장에서의 에피소드와 저자의 감상(感想)을 서술하고 있고 제2장에서는 특수청소업이라는 일에 종사하면서 겪은 애환이나 일화들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물론 주관적인 평가이나 내마음에 남았던 부분들을 몇 군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7쪽) 건물 청소를 하는 이가 전하는 그녀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다.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도 타인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47쪽)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중략)

생사를 놓고 고민할 만큼 인간을 궁지로 몰아붙인 지대하고 심각한 문제들. 죽은 이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머문 곳까지 찾아와 암울하고 축축한 얼룩으로 물들인 가난이나 외로움 따위는 죽음의 문을 넘는 순간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어지고, 그 아무리 중차대한 것조차 하찮게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돼버린다면 참 기쁠 것 같다.

 

(65쪽) 그의 쓰레기를 대신해서 치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다. 내 부단한 하루하루의 인생은 결국 쓰레기를 치우기 위한 것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해답도 없고 답해 줄 자도 없다. 면벽의 질문이란 으레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끊임없이 초대하는 세계, 오랜 질문들과 새로운 질문들이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건배를 제창하는 떠들썩한 축제 같다.

 

(91쪽) 서가(書架)는 어쩌면 그 주인의 십자가 같은 것은 아닌지. 빈 책장을 바라보자면 일생 동안 그가 짊어졌던 것이 떠오른다. 수많은 생각과 믿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인생의 목표와 그것을 관철하고자 했던 의지, 이끌어야 했던 가족의 생계, 사적인 욕망과 섬세한 취향, 기꺼이 짊어진 것과 살아 있는 자라면 어쩔 도리 없이 져야만 했을 세월. 그는 이제 십자가 같은 서가만 남기고 훌훌 가버렸다. 검은 원목 책장은 손쉽게 해체되고, 가벼운 낱낱의 널빤지가 되어 화물차 적재함의 바닥에 깔려 길을 떠난다. (중략)

수고한 내 어깨가 가볍다. 사실 가벼워진 것은 어깨가 아니라 내 마음 이지만.

 

(101쪽)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129쪽)   이 집을 치우면서 한 가지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이 곳에 남은 자들의 마음입니다. 당신은 사랑받던 사람입니다. (중략)

그들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아직 당신이 살아 있을 때, 병에 걸려 고통받으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은 절대 잊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남긴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지워질 테지만, 당신이 남긴 사랑의 유산만은 누구도 독점하지 못하고, 또 다른 당신에게, 또 다른 당신의 당신에게 끝없이 전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139쪽)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특별하다고 말하면 어떨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고귀하다고, 그리고 내가 하는 이 일도 너무나 소중한 직업이라고...

-- 당신이 하는 일처럼 내 일도 특별합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귀중한 사람이 죽어서 그 자리를 치우는 일이거든요.  한 사람이 두 번 죽지는 않기 때문에, 오직 한 사람뿐인 그분에 대한 내 서비스도 단 한 번 뿐입니다. 정말 특별하고 고귀한 일 아닌가요?

 

(197쪽) 자살을 결심하고 그 뒤에 수습할 일까지 염려한 남자. 자기 죽음에 드는 가격을 스스로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건 남자. 도대체 이 세상에는 어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연이 있기에 한 인간을 마지막 순간으로 밀어붙인 것만으로 모자라, 결국 살아 있는 자들이 짊어져야 할 , 죽고 남겨진 것 까지 미리 감당하라고 몰아세울까?

 

(237쪽) 본질적인 아이러니는 인간의 생사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등을 맞댔을 뿐, 사람의 생명과 죽음은 결국 한 몸통이고 그중 하나를 떼놓고는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다.

 

 

쉽고 흔하게 마주칠 수 없는 상황이 직업으로서 일상이 되어 있는 저자의 진솔한 체험담과 단상(斷想)들이 독자의 마음에 울림으로 와 닿는 좋은 에세이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희소성 있는 소재로 무겁지만 호기심 있는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서 귀한 간접 경험을 할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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